처음 무덤은 물집처럼 부풀어 올라 둥글다
죽은 이가 살아남은 이만큼 슬퍼
죽음이 웅크렸기 때문이다
세월이 흙이불 낮추면 죽음은 차츰 태연해진다
나도 죽고 내 아이도 죽고
그 죽음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조차 묵묵부답이면
드디어 산은 무덤을 삼킨다
곡선이 완성되자 이제 일생은 편안해진다
생이여! 한껏 발 쭉 뻗어라
--------------------------------------------------------------
▶송재학=(1955~ )경북 영천 출생.
1986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진흙얼굴』및
산문집『풍경의 비밀』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대구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죽음을 위해 태어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른다.
살 만큼 산 뒤 죽음을 맞는 게 자연사(自然死)다. 자연사라고 덜 슬픈 건 아니다. 흐른
세월에 봉분이 키를 낮추듯, 애도 감정도 잦아든다.
주검을 덮은 ‘흙이불’이 낮아질 때 그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도 다 세상을 뜬다. 마침내 산
이 무덤을 삼킨다. 주검이 볼품없는 것은 삶이 충분히 늠름하지 못한 탓이다. 생이여, 늠
름하게, 한껏, 발을 쭉 뻗어라!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