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나중에
고요한 시절이 오면
잘생긴 아들을 낳으리라
아들이 자라
착실한 소년이 되면
함께 목욕탕에 가리라
싫다는 아들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리라
할 수 없어서 나의 등은 밀었어도
아들은 내게 제 등을 맡기지 않으리니
나중에 나중에
내가 늙고 아들이 장성하면
다시 목욕탕에 가리라
싫다는 나에게
아들은 등을 돌리라고 하리라
할 수 없어서 나의 등은 맡겼어도
아들은 내게 제 등을 밀게 하지 않으리니
나중에 나중에
고요한 시절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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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수=(1961~2002)대전 출생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교사와
잡지사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 때는 용접공이기도 했고
원양어선 선원이 되기도 했는데 2000년 학원 강의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유고 시집으로 <새를 쏘러 숲에 들다>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을 뺀다면 시인 윤택수를 아는 사람은 드물 테다. 그는 충남대학교를 나와 중학교 국어교사, 잡지사 기자,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학원 강사 따위 직업
을 전전하며 시 110편을 쓰고 41세에 요절한다. 죽은 뒤 벗들이 『새를 쏘러 숲에 들다』라는 유고시집을 펴냈는데, 그 시집을 읽다가 사유의 약동과 상상력의 비범함에 놀랐다.
이 무명시인이 꿈꾼 것은 고요한 시절이다. 그런 시절 아들을 낳고 늠름하게 잘 키워 목욕탕 에 가서 등을 맡기는 게 꿈의 전부다. 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 꿈인가!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아직 그런 고요한 시절은 오지 않았다 한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