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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이 풍년
◇정끝별◇
쩍 벌어진 으름 씨는 새가 먹고 굴러 떨어진 헛이름은 개가 먹고 갓 벌어진 주름은 내가 먹고
군침 흘리던 해어름 먹구름은 나와 개와 새를 으르며
붉으락 붉으락 으름장을 펼쳐놓고 아뿔싸 입에 쩍쩍 들러붙은 가을 게으름이라니!
음 물큰한 처음 졸음처럼 들척지근한 죽음 음음 잘 익은 울음 오랜 으름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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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1964~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당선 등단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등 시론집 『패러디 시학』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유심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소리 내어 읽어봐야 제 맛이 난다. 으름·헛이름·주름은 ‘름’자 항렬이다. 해어름·먹구름· 게으름도 ‘름’으로 끝을 맞춘 방계 혈통이다. 다음에 오는 처음·죽음·울음은 ‘음’자 항 렬이다. ‘름’과 ‘음’은 소리값이 유사한 고종 사촌지간이다.
으름, 으르는 것, 으름장은 이종사촌쯤 되겠다. 누군가는 으름을 먹고 게으름을 부리며 주름을 늘리며 산다. 그 사이 물큰한 ‘처음’들과 잘 익은 ‘울음’들이 끼어든다. ‘처음’과 ‘울음’으로 연륜을 쌓으며 살다 마지막으로 맞는 게 ‘죽음’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4.21
http://blog.daum.net/kdm2141/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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