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을 끝내고
⊙유승도⊙
도랑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일어나
어둠이 내리는 마을과 숲을 바라본다
끄억끄억 새소리가
어슴푸레한 기운과 함께 산촌을 덮는다
하늘의 하루가 내게 주어졌던 하루와 함께 저문다
내가 가야 할 숲도 저물고 있다
사람의 마을을 품은 숲은 어제처럼 고요하다
풍요롭지도 외롭지도 않은 무심한 생이 흐르건만,
저무는 것이 나만이 아님이 문득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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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1960~ ) 충남 서천에 있는 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나의 새' 등 시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가 있으며,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를 펴냈다.
지금 강원도 망경대산 허리춤에서 자급자족하는 농사를 지으며
글밭을 가꾸고 있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날이 저무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마을과 숲에 어둠이 내
린다. 우주는 어둑어둑해지는 일을 하고 있다. 날이 저무는 이 흐름과 움직임은 조금도
조급함이 없이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날이 저무는 때여서 선선하고 잔잔하겠다.
산골에서의 봄은 저무는 때에도 좀 풋풋하겠다.
어둠은 사물과 생명들에게 평등하게 내린다. 햇살이 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등의 차
이 없이 함께 날이 저물고, 함께 새날이 밝아온다. 그런데도 '함께' 눈을 감고, '함께'
눈을 뜬다는 것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다.
꽃과 새와 가족과 이웃과 동네와 거리와 시장과 들판과 광장과 봄산과 하늘과 함께 눈
을 뜨고 눈을 감는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이 시는 오늘 저무는 때에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더 읽어보자.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