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Garden, Adagio
사냥꾼의 노래
◇문정희◇
여름과 가을 사이
발걸음 소리를 작게 하리라
성찰과 냉정을 두둔하고 밥을 적게 먹으리라
뿔 하나를 머리칼 속에 숨기리라
철새 한 마리 심장으로 들어오면
보랏빛 꽃을 들고 반기리라
별과 조개껍질과 짐승 뼈의 기억을 가진
미라 따위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보리라
늙은 사냥꾼처럼 명민해지리라
우연을 도움을 받지 않은 사냥꾼은 없다는 말을
곰곰이 새겨보리라
여름과 가을 사이
꽃들은 더 이상 예쁘지 않고
마지막 힘으로 지붕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촉촉하게 젖은 입술로 허공을 노래하리라
--------------------------------------------------------------
▶문정희=·약력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등.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시집 번역 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시인협회장.
누구나 예외 없이 사냥꾼이거나 사냥감이 되는 시대다!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선택은
둘 중의 하나다. ‘액체 근대’를 통찰한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 )
의 말이다.
국경 없는 시장 경계 없는 지구의 시대, 시인들은 영리한 방식으로 착취하는 이 끔찍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살면서도 벌거벗은 생명들을 가여워하고 상생(相生)을 노래한다!
이 지혜로운 사냥꾼들은 철새 한 마리조차 심장으로 품고, 죽은 것들의 기억이나 반추한
다. 밥을 적게 먹고 뿔 하나를 제 머리칼 속에 숨긴 이들의 외침을 누가 들을 것인가?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