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울었다
◆이병률◆
고양이 한 마리가 동네 골목에 살았다
검은 비닐봉지와 살았다
검은 봉지 부풀면 그것에 기대어 잠들었고
검은 봉지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그것을 핥아 먹으며 살았다
어느 날 검은 봉지가 사라졌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였을 것이고
누군가 주워가기도 하였을 것이나
아주 어려서부터 기대온 검은 봉지를 잃은
고양이는 온 동네를 찾아 헤매다
죽을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를 형제 삼아 지내온 날들
고양이가 울었다
잠든 형제를 위해 자꾸 자리를 비켜주던 날들
뼛속으로 뼛속까지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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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1967~)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좋은 사람들>
<그날엔>당선되어 등단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
만일 사람이 고양이라면 저마다 ‘검은 비닐봉지’와 같은 무엇을 갖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돈이건 권력이건, 우정이건 우매한 자기 확신이건, 혹은 신앙이건 예술이건! 사람은 본
질에서 고독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기에 기댈 만한 무언가를 구한다.
‘검은 비닐봉지’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적 욕망과 환상이 투사되면 장미
꽃봉오리나 무지개로, 목숨이나 신앙으로 변한다. 그걸 잃으면 정신줄을 놓고 “죽을 것
처럼 아프기”도 할 것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