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메이트
◆이근화◆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
우리는 우리가 좋은 세계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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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1976~ )1976년 서울에서 출생
단국대학교 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가 있다. 윤동주문학상(젊은작가상 부문, 2009),
김준성문학상(2010), 시와세계작품상(2011)을 수상했다.
이 세계가 좋다니! 이 눈부신 긍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비참한 가난이나 평범한
악들은 물론이거니와 짓누르는 권태조차 도무지 모른 채 빗속에서 즐거워하는 ‘소울 메이
트’라니! 비의 기억을 만들고, 비의 냄새를 훔치려고 옷이 젖을 줄 알면서 비를 맞는 것은
소녀들이리라.
소녀들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 까르륵 웃는다. 이들을 철없다고 야단치지 마라. 이 경이로
운 존재들은 빗속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고 제 밝은 기운을 세상과 나눈다. 이 세상을
위해 소녀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