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월 -허 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 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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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연=(1966~ ) 서울에서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나쁜 소년이 서 있다』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가 있음.
현재 일본 도쿄에서 거주.
칠월은 이미 여름의 절정이다. 금빛 햇빛이 도처에 타오르고 산딸기는 잎사귀 뒤에서 빨갛
게 익는다. 숲이 서늘한 녹색 그늘들을 기를 때 칠월은 ‘행복’과 ‘무심’ 사이로 흘러간다. 어
떤 연인들은 파경과 이별을 겪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진다. 여름날이 늘 천국은
아니다.
우리에게 당도한 칠월엔 ‘체념’이나 ‘흑백영화’,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잊은 그대’도 있다.
과거라는 빗물에 쓸려가 버린 나날들. 그랬으니 골을 파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빗물 속에
서 문득 ‘당신’이 비치기도 한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