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oken Words - Hiko
저녁의 발견
◆강문출◆
지갑을 열어야 할 때
입을 열고 있으면 저녁이다
한마디 한다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저녁이다
상투적 은유에
스스로 도취되면 저녁이다
작심하고 한마디 했는데
말의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면
저녁이다
훤히 보이는 세상이
메마른 사막 같다 싶으면 저녁이다
인간이나 낙타나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싶으면 저녁이다
동료가 죽으면 낙타 새끼를 함께 묻어
낙타의 모성애로 그 자리를 다시 찾는
곡절이 떠오르면 저녁이다
생존을 위한 살생과 해치는 것에 대해
혼돈이 생겨나면 저녁이다
살생도 해침도 없는 낙타들이
죽어 사막의 길라잡이별이 되는 것이
틀림없다 싶어지면 저녁이다
누구도 해친 적 없는 영혼들이
종국에는 모두 다
별이 된다 싶어지면 저녁이다
전에는 알 수 없던 해답들이
대중없이 떠오르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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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출='1953년 부산 기장에서 출생
2011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문단에 나온
강문출 시인이 첫 시집 『타래가 놀고 있다』를 상재했다.
그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무역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일성산업 대표로 있다.
〈시작노트〉
몇 년 전 조그마하던 사무실 앞 가로수가 훌쩍 자라 그늘을 드리운다. 그늘이 꼭 지혜 같다.
나잇살이 그늘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에는 누구나 멀리
가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는 법이다.
kookje.co.kr/201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