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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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1970~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에〈뿔〉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가 있음.
현재 강남대학 국문과 교수로 재직 中.
김행숙의 화법은 낯설고 모호하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는 세계는 어떤 세계를 말하
는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라는 단서에 기댄다면, 그것은 우리를 범속한 평면에
가두는 세계다.
그 평면을 깨고 도약하는 “검은 돌고래”는 무의식 안에 숨은 열망을 보여주는 것일까?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일지라도 솟구쳐 오르는 다정함은 키우고 장려해야
할 인류의 덕목이다.
그런 덕목들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당신
에게] 한없이 다가”가야 한다. 다정함이야말로 삶에 의미의 빛을 더 비추고 우리를 구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