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haps love - James Galway (Flute)
벗는다는 것
◆이채민◆
잠시 다니러 온 어머니의 몸 씻기려 하는데
어머니는 벗지 않으려 완강하게 버틴다
늙은 여자의 옷 벗기는 일이 이토록 힘이 드는데
남자들은 집에 있는 여자 밖에 있는 여자
젊은 여자 나이 든 여자
때를 놓치지 않고
잘도 벗기고 어루만져
그 덕분에
지구는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벗었고
그녀와 내가 벗었고
잘 벗었을 때 평화가 찾아 들더라
여자와 남자가 잘 벗었으므로
지구는 내일도 무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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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민=(1957~ ) 충남 논산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2004년 계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현재 계간 《미네르바》 편집위원, 작가회장.
한국시협 간사로 활동 中.
낙원에 살았다는 태초의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았다 한다. 벌거벗음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가 순진무구 그 자체였던 까닭이다. 옷을 걸친 것은 실낙원 이후 인류가 겪은
문명화의 결과다. 옷은 취향과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표지이지만, 그 본질은 문명이 덧
씌운 관습이고, 벌거벗은 자아를 가리는 헝겊 갑옷이다.
벗음은 본성적 자아,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뜻일 테다. 연인들은 옷을 벗고 사랑을
나누는데 옷이 거추장스러운 잉여인 탓이다. “잘도 벗기고 [서로를] 어루만”지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음으로 지구는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