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이생진 作 <그리운 바다 성산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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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1929~ ) 충남 서산 출생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혼자 사는 어머니>(2001), <개미와 베짱이>(2001)
1996년 윤동주 문학상 수상1998년 문학의 즐거움 가입
2001년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음 2002년 상화(尙火)
시인상 수상 2004년 문학의 즐거움 고문
■ 제주 바다에 관한 시 중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바다에 가면 작아진다. 그 거
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다는 치유
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자신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역설적
으로 위로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나도 그렇
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작디 작은 내 존재를 이끌고 바다에 가고 싶다. 등
대 밑에서 졸고 싶다. 바다는 우리들의 병원이다.
[허연 문화부장(시인)]
mk.co.kr/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