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세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먼 기적 소리도
산 속의 새집들도
먼저 내린 빗방울들도
함께 섞여 비를 맞는다
짐승들도 젖어서
돌아간 이 길 위에
오직 나 혼자
메마른 검불처럼
선 채로 젖지 못하여
검불처럼 젖지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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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1957~ ) 함안에서 출생
1987년 <지평>과 시집 <남해행>을 출간하여 문단활동
1995년 <시조 시학> 신인상으로 시조창작을 병행
시집<말뚝이 가라사대>,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
<남해행>이 있으며, 사화집<비 내리고 바람 불더니>,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경남문학상, 마산시 문화상, 경남시조문학상 <시와 생명> 편집인,
마산문인협회장을 역임 경남문인협회 부회장으로 있다.
비는 몸뚱이나 몸뚱이를 가린 옷이나 거죽을 적실 따름이다. 허나 이 몸은 벗어버려야 할
허물, 혹은 “쓸데없이 소리만 나는 폐기된 골동품”(말라르메)이나 다름없는 것. 비는 몸의
남루를 적시지만 영혼의 빛을 꺼뜨릴 수는 없다. 오, 비여! 세상을 적셔라.
짐승들도 젖어서 돌아간 이 길 위에서 끝내 젖지 못한 자를 기억하라. 혼자 젖지 않는 자는
이단의 존재, 고독한 자다. 그는 영혼의 빛을 품고, 인생에서 의미라는 꿀을 따 모으는 자다.
그런 존재만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아름다움을 견딜 수가 있다.
*(말라르메) [François-René-Auguste Mallarmé] 1793년 잠시 국민공회 의장
을 지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혁명 때 뫼르트 주 입법의회 의원
을 거쳐 국민공회 의원으로 뽑혔다. 여기서 급진적인 산악당에 가담해 루이 16세
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