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 범종 소리를 듣고 있다
문득, 듣는 나는 사라지고
화엄의 종소리만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부드럽게 뻗어나가는 종소리의 길
종소리는 땅 속에서 끌어올린 물소리처럼
맑게 내 안을 적시며 흘러든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는 누이의 마음같이
마음의 그늘을 어루만지며 흘러든다
가슴 깊은 곳에서 누이가 내게 묻고 있다
네가 있는 곳이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고 있는지
흔들리는 내 중심을 타이르듯 어루만지며
본래 있던 자리에 다시 나를 앉히는 누이
내 저녁 시간이 영은사 범종소리에 맑게 씻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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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임=(1953~ )2002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2008년 《강원일보》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달빛 문장을 읽다』(문학아카데미, 2008)가 있음.
영은사 범종 소리를 들어 보셨는가? 범종 소리는 “끝까지 비움을 다하고 맑고 고요함을
굳게 지킴致虛極 守靜篤”(노자, 16장)과 하나다. 그 범종 소리 듣는 자리가 인생의 진짜
기쁨이 있는 곳이다. 천진난만한 마음만 남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라.
저 화엄의 종소리는 우리 상처를 보듬는 다정한 “누이의 마음”을 닮았다. 문득 내가 사라
질 때까지 저 범종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범종 소리는 “마음의 그늘을 어루만지며”, 내
안을 적시고 스며서 더러는 내 중심을 어루만지며 나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