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물을 마신다
◆유안진◆
달물을 마신다
물 한 그릇을 창가에 놓아둔다
갈증이 가신다
밤이 좋은 까닭이다
달뜨지 않는 밤에도
깜깜 내 속에는 달[月]이 밝으니까
동리 운수도인(東里 雲水道人)께서
명월여시(明月如是) 넉자를 써 주신 본뜻이리.
--------------------------------------------------------------
▶유안진=(1941~ )경북 안동에서 출생.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 1970년 첫시집 『달하』를 간행한 이후
『물로 바람으로』(1975) 『월령가 쑥대머리>(1990),
<봄비 한 주머니>(2000) 등 1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고,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8) 『축복을 웃도는 것』
(1994) 등과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1990)
『땡삐』(1994) 등의 작품이 있음. 한국펜문학상(1996),
정지용문학상(1998), 월탄문학상(2000) 등을 수상.
맑은 물 한 그릇을 떠서 교교한 달빛이 내리는 창가에 두었더니 어느 틈에 벌써 갈증이 가
셨다는 이 시구는 그윽한 흥취가 있다. 썩 밝고 깨끗한 빛은 몸의 목마름뿐만 아니라 마음
속의 갈증도 가시게 한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 시인의 마음속에는 달이 솟아올라 탁 트이고 시원하게 밝다고 말한
다. 그 이유인즉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 선생께서 생전에 시인에게 '명월여시(明月如是)'라
는 글귀를 써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산(空山)에 외로이 비치는 밝은 달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명월(明月)이 있음을 잊지 말
라고 써주신 것이리라. 마음속에도 본디부터 명월(明月)이 있음을 잊지 말아 그 원만한 달
처럼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게 살라고 당부하신 것이리라.
문태준 시인[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