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또박또박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누군가 내 눈을 감기고
누군가 내 입에 재갈을 물린다
엄청난 우레도 지나가고
잔잔한 미풍도 흘러갔다
얕은 계곡과 녹색 잎사귀들이
비스듬히 햇빛 쪽으로 기운다
어떤 후회나 흔들림도 없이
누군가 또박또박 내 밖으로 걸어 나간다
누군가 나를 응시한다,
아주 우호적으로 한 무리 양 떼가 지나간다
나는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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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1952~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를 졸업 1989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둥지, 1990), 『고요한 입술』
( 민음사, 1997),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시와반시사,
2003), 『녹슨 방』(민음사, 2006)가 있으며
2005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바깥과 매순간 마주하고 있다. 바깥은 스쳐 가지만 때로는 우리의 내부를 유심하게
살피고 때로는 영향을 끼친다. 가령 싱싱한 아침의 한 잎사귀, 잘 익은 들판, 햇살, 붉은 한
알의 사과, 가을밤의 냉담한 공기 등은 우리와 마주하면서 우리의 내부에 영향을 끼친다. 이
것들은 우리를 읽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유리창 너머의 풍경은 매우 입체적이다. 또한 또렷하고 정밀하다. 또박또박 우
리의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또박또박 걸어 나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주 객관적으로
우리를 읽는다. 마치 이 가을이 우리 모두에게 고르게 작용하듯이.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