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늑 -민왕기-
쫓겨 온 곳은 아늑했지, 폭설 쏟아지던 밤
깜깜해서 더 절실했던 우리가
어린아이 이마 짚으며 살던 해안(海岸) 단칸방
코앞까지 밀려온 파도에 겁먹은 당신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던,
함께 있어 좋았던 그런 쓸쓸한 아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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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기=(1978~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단국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
계간 《시인동네》 2015년 가을호에 〈고래〉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前《강원일보》문화부·정치부 기자, 기자협회보 기자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오죽하면 어떤 시인은 “나는 지뢰밭 위에서 잔다”고 고백했을까.
그리하여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늘 피난처를 구한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 무언가에 쫓길 때나, 겁먹었을 때, “깜깜해서 더 절실”할 때,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는 “당신” 때문에 그나마 이 세상이 살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모든 “아늑”은 “쓸쓸한 아늑”이다. 결핍은 유한자(有限者)
인 모든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핍과 유한성 안에서 분투한다는 것은 또한 얼
마나 장엄한 일인가. 결핍이 우리를 키운다. 계간 ‘시인동네’ 2015년 가을호 수록.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
joins.com/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