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 -이병률-
손바닥으로 쓸면 소리가 약한 것이
손등으로 쓸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삶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먹을 것 같지 않은 당신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열어본 당신의 가방에서
많은 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삶의 입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못했던 간밤 꿈이
다 늦은 저녁에 생각나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그것을 삶의 아랫도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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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1967~)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좋은 사람들> <그날엔>당선되어 등단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
탈근대 철학의 공헌 중의 하나는 모든 형태의 이분법을 의심하고 해체한 것이다. 존재의
‘면(面)’이 아니라 면과 면의 겹침, 즉 “면면(面面)”을 동시에 바라볼 때, 우리는 세계에 대
한 “입체”적 이해에 도달한다.
대립물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쳐 있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 겹침과 스밈
이 존재와 삶의 역학이다. 모든 윗도리는 “아랫도리”와 함께 있다. 삶의 숨어 있는 “이면”과
“입체”와 “아랫도리”를 잘 들여다보는 것, 거기에 삶에 대한 웅숭깊은 이해가 있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
joins.com/201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