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이 굽이쳐
휘돌아나가면서 상류에서 휩쓸려 내려온
모래알들이 쌓이고 쌓인 곳,
강변의 작은 모래밭에 살았습니다
강물이 무슨 산고의
진통 끝에 새끼를 낳아 품듯이
지적도 등기도 없는
그 무국적의 반짝이는 금모래밭을 돌아
유정천리, 하염없이 흘러가는 당신을
애타게 부르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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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1961~ ) 경기 화성에서 출생.
1998년 《현대시학》에 〈揚水機〉외 네 편을 발표 등단
시집『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2003) 등
2004년 제9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2009년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 출간
이 시를 읽으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 뒷문 밖에는 갈잎
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생각난다.
강이 휘어서 구부러진 곳에 쌓인 모래밭을 시인은 보고 있다. 고운 모래가 넓게 덮여 햇살에
가볍게 잇따라 반짝이는 그곳을 보고 있다. 그 누구와도 소유 관계가 없는 모래밭은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산통을 겪으면서 낳아 품은 것.
그 모래밭은 우리의 삶이 살다 가는 영토처럼, 옥토(沃土)처럼 보인다. 그 금빛의 모래밭은
우리의 삶이 때때로 갖게 되는 기쁨과 평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물은, 인생의 시간은 모래
밭을 돌아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러면 우리는 이별한 사람처럼 또 애가 탈 것이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