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중여관 1
◆함명춘◆
마당엔 제비가 낙엽을 쓸고
몇 개인지 모를 방을 옮겨다니며
물고기들이 걸레질을 할 동안
오동나무와 족제비는
아궁이를 지펴 서둘러 밥을 짓는다
뒤뜰에는 장작을 패는 바람의 도끼질 소리
혹시나 오늘은 어느 객이 찾아오려나
주인인 듯한 허름한 옷차림의 산국화
현관문 앞 숙박계를 어루만지며
길고 흰 수염을 쓰다듬듯
시냇물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가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잃어야 한 번 쯤
묵어갈 수 있는 산중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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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춘=(1966~ ) 강원 춘성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활렵수림> 당선
시집 『빛을 찾아선 나뭇가지』 『무명시인』
겨울의 초입에 서니 이런 산중여관에 가고 싶다. 가을은, 낙엽은 다 졌겠다. 나목이 되어
조용히 서 있어도 좋겠다. 산중여관의 주인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해서 노랗고 작은 산국
화처럼 나를 보고 반겨 웃을 것이다. 그러면 엷은 향기가 그에게서 내게로 올 것이다. 나
는 세상을 떠나와 산중여관에 묵고, 시냇물은 세상을 찾아가라고 거룻배를 띄워 보내도
좋겠다.
방과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불을 때 밥을 짓고, 밤새 문 밖에서 낙엽을 비질하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싶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늦은 밤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면 어느새 나도
수수해져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 목침(木枕)을 베고 누우면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처럼 순
하게 잠들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복하게 내린 눈을 순은의 아침에 보게도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