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능금
◆김만옥◆
봄비가 다녀간 담장밑 양지쪽에
어느날 딸아이가 능금씨 심는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와도
싹은 나지 않고 가슴 죄는데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와서
까마득 그 일 다 잊어버릴 때
딸아이 마음 속에 능금꽃 필까
딸아이 마음 속에 능금이 열릴까
딸아이에게
퇴비 한 줌 주지 못한
어른이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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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1946~1975)(金萬玉)전남 완도에서 출생하
1966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아침 장미원 」등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 창작에도 재능을 보여 1971년
<전남일보>와 <대한일보>의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었고
시집<슬픈 계절의> (64년) 와 유고 시집 <오늘 죽지않고
오늘 살아있다> <서울신문>의 5.16민족상 수상
착하고 예쁜 아이가 한 알 능금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이불처럼 덮어 준다.
때마침 봄비도 다녀갔다. 아이는 능금씨가 눈을 떠 싹이 나고 가지를 뻗고 능금이 열리고 붉
게 익기를 빈다. 아이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아침마다 능금씨 묻은 담장 아래에 가보았
겠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도 도통 싹이 나지 않았으니 아이는 또 얼마나 실망하여 맥이 풀
렸을까.
시간이 오래되어 아이가 능금씨를 심은 일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 시인은 문
득 묻는다. 아이의 마음에 심은 꿈이라는 능금씨가 꽃 피고 열매를 열었는지를. 그리고 딸아
이의 소망이 이뤄지는 일에 어른으로서 작은 보탬도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매일 매일의
밤을 능금씨처럼 웅크려 잠들었을 아이여, 미안하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