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oken Words - Hiko
밥 -김재혁-
그대와 나 사이에 밥솥을 걸고
조금 기다린다.
지난여름을 울어 주던
뻐꾸기 소리를 생각하며
조금 더 기다린다,
기다림이 익기를.
생활은 양식과 같다고
밥솥에게 말하며
각자의 가슴에게 던지며
차가운 겨울엔
지난여름의 매미를 생각한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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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1959~ )충청북도 증평군 출생
현대시에 등단 독문학 번역에 있어서 한국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60여권의 독일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말
테의 수기>,<책 읽어주는 남자>,<파우스트 등을 번역하였으며>,<tvn
비밀독서단에 방영된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또한 그의 번역서
중 하나다. 시집<내가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아버지의 도장>,
<딴생각> 등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뜸을 들이듯이 한동안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슴이 추운 때에는 지난여름의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지난여름
의 하늘을 울어주던 뻐꾸기 소리와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매미의 울음소리를 떠올려보는 것
도 좋다.
열매나 씨가 여물기를 가을의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여물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
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시인은 시 '사랑의 노래
'에서 "사랑은 가슴속 스케치"이며 "사랑은/ 멀리 깨끗한 하늘이 되기를"이라고 썼다. 가슴
속에 그린 첫 그림이 사랑이요, 만월(滿月)처럼 멀리 깨끗하게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또한 사랑은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