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篆刻)
◆문효치◆
작은 돌에 새기다가
그만 내 가슴을 쪼았다
짙게 음각된 이름
향기로운 계절과
우수의 한때
세월이
눈처럼 쌓이고
이름 위에 이제는
숨결이 살아
붉은 새살로
돋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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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1943~ ) 전북 군산에서 출생.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무령왕의 나무새』, 『남내리 엽서』, 『계백의 칼』, 『왕인의 수염』등
의 10여 권과 산문집 『시가 있는 길』 등의 3권이 있음. 동국문학상,
펜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옥관문화훈장 등 수상. <신년대>, <진단시>
등의 동인으로 활동.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주성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겸 주간, 계간 『연인』 편집고문.
사는 일이 어느 때에는 나무나 돌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나무나
돌 아니라 내 가슴에 잊지 않게 단단하게 이름을 새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이름을
혹은 내가 간절하게 사랑했던 이름을,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름을 새기는 일처럼 느껴질 때
가 있다.
그 이름을 새기노라면 과일처럼 꽃처럼 달콤하고 향기롭고, 또 슬픈 기억의 대목에서는 먹구
름처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마음의 토양 위에도 흰
눈은 내려 쌓였으니 오로지 그 이름에는 새 숨결만이 있을 일이다. 새해에는 누군가의 이름
이 우리의 가슴에 시냇물처럼 돌돌 흐르고, 또 눈부신 햇빛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깊은 눈 속에 살자.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