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푸른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한 말굽자석의
푸른빛의 극에도
붉은빛의 극에도
딸려가 닿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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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1953~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첫시집<눈부신 꽝>(문학동네)출간
이 시의 원문에는 “나는 이 세상의 드 트로(de trop), 신에도 인류에도 관련 없는 잉여물
이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제사(題詞)로 달려 있다. 이 시를 읽고 역사라는 “거대한
말굽자석”의 어느 “극”에 서지 않으면 “잉여물(de trop)”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
다. 그러나 보라. 말굽자석에는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페인트는 위장, 장식, 꾸밈이라
는 내포를 가지고 있다.
이 시는 어느 극단에도 끼어본 적이 없는 자신을 “잉여물”이라고 후회하고 있지만, 그 극
단의 ‘허상’에 대한 진술을 이렇게 슬쩍 깔고 있는 것이다. 시의 힘은, 외눈이 아니라 겹눈
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말과 노새가 필요하면, “당나
귀”도 필요하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