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른다
◆최영규◆
오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금세 산이 또 하나 쑥 솟아 오른다
내 안은 그런 산으로 꽉 차 있다
갈곳산, 육백산, 깃대배기봉, 만월산, 운수봉…
그래서 내 안은 비좁다
비좁아져 버린 나를 위해 산을 오른다
나를 오른다
(중략)
기진맥진 나를 오르고 나면
내 안의 산들은
하나씩 둘씩 작아지며 무너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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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1957~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
시집 <아침시집><나를 오른다>출간
한국시문학상, 경기문학상, 바움작품상 수상
산, 아니 그 정상이야말로 극명한 경계다. 가끔은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지평선, 수평선
과 비교해 보라. 산 정상이야말로 육지의 끝이며 하늘의 시작이다. 그것은 곧바로 희망의 종
말이고, 허망의 시작을 비유한다.
소월은 그 꼭대기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불러 이 질곡(桎梏)을 시사(詩史)에 기입했다.
그 뼈저린 회한이 오늘 아침엔 “비좁아져 버린 나를 위해 산을 오르”는 새 행위로 번역된다.
누군들 모르랴? ‘오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안에 가득 들어서는 산들의 정체를. 하지만 그
산을 기어이 오르며 회한을 곱씹는 건 또 다른 용기다. 삶에의 찬사다.
<백인덕·시인>
joins.com/201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