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
◆정희성◆
오십 줄 내 나이 맑은 어둠을 둘러
어제는 난초잎 한 줄기가 새로 올라왔다
그 해맑은 수묵색(水墨色)
차분한 그늘을 데불고
나의 잠 속엔 한밤 내 벌레가 쑤런거린다
난초잎 한 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닌 밤 잠마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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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1945~ ) 경남 창원에서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등과 그 밖에 『한국현대시
의 이해』(共著) 등이 있음.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시와시학상' 수상. 현재 숭문고등학교 교사로 재직中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도록 시인은 많은 것을 겪었을 것이다. “어둠”과 “그늘”을 거쳐
왔으나 난초 앞에 서니 그 어둠과 그늘이 “맑은” “차분한” 것으로 바뀐다. 그래도 생각은 많
아 잠 속에서도 “벌레”가 “쑤런거린다”. 생은 소요(소란하고 시끄러움) 가운데 가끔씩 고요
를 만나는 것.
난초잎이 한 줄기씩 올라올 때가 그런 시간이다. “잠마저” 외로운 시간이지만, 그 “해맑은
수묵색”으로 생의 남루(襤褸)가 정갈해진다. 눈 뜨면 다시 벌레들의 쑤런거리는 소리가 들
릴 것이다. 생으로 다시 침잠할 때, 난초의 시간이 그리워질 것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