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진역
◈이우걸◈
낙엽이 쌓여서
뜰은 숙연하다
노인 혼자 벤치에 앉아
안경알을 닦는 사이
기차는 낮달을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
▶이우걸=(1946~ )경남 창녕 출생.
1972년 《월간문학》당선, 1973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지금은 누군가 와서』『빈 배에 앉아』
『저녁 이미지』『그대 보내려고 강가에 나온 날은』
사화집『네 사람의 얼굴』『다섯 빛깔의 언어 풍경』
시조 평론집 『현대시조의 쟁점』『우수의 지평』
《서정과 현실》발간, 현재 경남문학관 관장
기차역은 우리의 인생이 사실상 ‘유랑’이며 모든 현재가 ‘정주(定住)’의 삶이 아님을 지시하
는 메타포이다. 그 길에 때로 낙엽이 쌓이고 유랑의 끝이 죽음임을 “숙연”하게 알려준다. 종
점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혼자 벤치에 앉아/ 안경알을 닦는” 모습은 그리하여 모든 존재
의 미래이다.
우리 모두가 금방 사라질 “낮달을 싣고/ 어디론가” 가는 시간의 열차에 동승하고 있다면, 같
은 운명이라면, 조금 덜 싸우고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