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1
◈권혁웅◈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점점 소파를 닮아가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하죠
치맥이란 술 취한 조류인데 날지 못하는 녀석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
동물계 척추동물문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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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1967~ )충북 충주에서 출생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가 있고, 『두근두근』,
『꼬리 치는 당신』 등의 산문집과, 『미래파』, 『입술에 묻은 이름』,
『당신을 읽는 시간』 등의 평론집과 해설집을 펴냄.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을 받았다.
시는 새로운 렌즈로 세계를 읽는다. 이 시는 ‘고급 동물’인 “남자 사람”의 하루를 코믹하게
건드린다. 세상에, “치맥”이 “술 취한 조류인데 날지 못하는 녀석”이라니. 낄낄거리며 이
시를 읽다 보면 어느덧 “동물의 왕국”에서 지리멸렬한 생애를 보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