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에서 피어난 꽃
◈안주철◈
밤새 폐지를 주워온 아버지 주무신다
하루에 세 차례 시장가는 아버지
아침 먹고 첫번째 잠을 주무신다
어머니 나가신다. 흩어진 폐지를 묶고
폐지보다 더 낡은 트럭위에
어머니 물을 뿌리신다
우리집 폐지들은
나무보다 물을 더 먹는다
좋게 생각하면 종이도 나무다
죽은 나무
(중략)
고물상 가기 전
우리집 폐지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일 톤짜리 화려한 꽃을 피운다
-안주철 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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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1975~ )安舟徹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배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기발하고 따뜻한 시다. 폐지가 쌓여 있는 곳에 먼지 나지 말라고 물을 뿌리는 광경은 종종
봤을 것이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광경인데, 시인은 이것을 지켜보면서 폐
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한다.
근거도 그럴듯하다. 종이는 원래 나무로 만든 것이니까. 물을 자꾸 주면 꽃이 피어날 수도 있
다고 시인은 귀여운 상상을 한다. 언뜻 보면 가난한 일상을 그린 시로 보이지만, 이 작품는
그 이상의 예술성이 있다.
만약 이 시가 `가난`에서 멈췄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재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
는 감탄스러운 시적 경지를 만들어냈다. 폐지 더미에서 일 톤짜리 꽃을 피워낸 시인에게 박
수를 보낸다.
[허연 문화부장(시인)][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