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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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1959~ )충청북도 보은 출생
1987《우리 시대의 문학》에 〈금호강〉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붉은 눈, 동백》
《10년 동안의 빈 의자》《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2000제13회 「동서문학상」, 제19회 「김수영문학상」, 2008
제8회 「미당문학상」,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상」, 2010년 제3회
「이상시문학상」을 수상
분홍 나막신 신고 가는 널 보았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려다 입술이 굳었다. 너는 춤추는
듯 했으나 절름거렸다. 딛는 곳마다 꽃물인 줄 알았으나 핏물이었다. 너는 애써 웃음 짓지만
울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골목에 숨어 울었다.
평소 네 발꿈치를 한 번이라도 만져보았더라면, 네 복숭아뼈가 아직 살구씨만한 걸 알았더
라면, 지푸라기라도 재어 나막신 장수에게 가져갔더라면. 아니, 나막신은 춤 출 때가 아니라
진창을 걸을 때 신는 거라고 알려주었더라면. 내가 근엄한 헛기침이 아니라 푸근한 트림이
었더라면.
<시인 반칠환>[시로 여는 수요일]
hankooki.com/201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