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진화
◈심보선◈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 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민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다!
--------------------------------------------------------------
▶심보선=(1970~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오고
콜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문학과지성사)
책 읽기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는’ 유효한 방식이지만 아무리 책상에 “장기 투숙”
을 해도 세계가 빠진 인식은 무의미하다. 세계는 “영원한 악천후”로서 “진화”의 마지막 목
적지다. 책장을 넘어 세계의 고통을 만날 때 사유는 완성된다. 세계의 “벼락”이 달콤한 위
로(“설탕”)보다 낫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