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속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黃土)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
▶천상병(千祥炳,1930년~ 1993)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이다. 일본 효고 현 히메지 출생
원적지는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시집《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저세상으로 가
서 그는 이승에서의 삶이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귀천(歸天)’) 했다. “한 그루의 나무
도 없이/ 서러운 길”에서의 삶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어떤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커서 가난과 죽음을 덮고도
남는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