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다는 것
◈전동균◈
피네스테레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은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운다
-전동균 作 <거룩한 허기>
--------------------------------------------------------------
 ▶전동균=(1962~ )경북 경주에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중앙대 예술대학원을 졸업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에 『오래 비어 있는 길』
과『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2002) 등이,
산문집에 <나뭇잎의 말>이 있다.
■ 결기(決起)가 느껴지는 멋진 시다. 피네스테레는 순례코스로 유명한 '산티아고 길'의 끝 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우며 인생의 오욕과 과거를 모두 재로 날려 버린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된다. 지구 건너편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 청둥오리 날아가는 방죽에선 시인이 자신의 시를 불태운다.자신의 상처와 환희가 모두 담겨 있을 시를 불태우며 새롭게 시 앞에 설 것을 선언한다.
절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압축미와 리듬, 그 어느 것도 나무랄 데가 없다. 짙게 배어 있 는 낭만까지도. 가장 훌륭한 깨달음은 자기 자신이 이룬 것조차 불태워버리는 것일지도 모 른다. 그 집착과 기억마저 버릴 수 있을 때 '신(神)'도 '시(詩)'도 나를 찾아와 주는 것이 아닐 까.
[허연 문화부장(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6.19
 http://blog.daum.net/kdm2141/6205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