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속에 핀 꽃
◈이기인◈
청송교도소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밥풀냄새가 난다 그쪽도 내 독자다
지금은 봄이군요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새순이 돋아서 좋다 꽃이 피어서 좋다
그쪽도 어쩌다 내 쪽으로
가지를 뻗어서 좋다
검열한 편지지 속에서
삐뚤삐뚤 피어난 꽃
볼펜 한자루에서 피어났다
오늘은 저녁 쌀 씻다 한줌 쌀을 더 씻다
- 이기인作 ＜시인에게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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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1967년~ ) 李起仁 인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ㅎ방직
공장의 소녀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집으로『알쏭
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
■ 우연히 받아든 편지 한 통을 읽는다.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영어(囹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이 보낸 편지다. 남은 밥풀로 봉투를 붙였는지 밥풀 냄새가 아직도 난다. 시인은 볼펜
으로 어렵게 써내려간 사연을 '삐뚤삐뚤 피어난 꽃'이라고 표현한다. 갇혀 있는 사람이 시인
에게 보낸 편지를 시인은 '꽃'을 받아들듯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인생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누구에게나 아프다. 아마 그 어떤
독자편지보다 묵직하게 다가왔을 것이다.그리고 시인은 저녁을 지으며 쌀 한 줌을 더 씻는
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와서 먹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씻
다'라는 단정적인 종결어미로 시를 끝낸 부분도 눈길을 끈다. 좋은 시다.
[허연 문화부장(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