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실체
◈이승하◈
화장터에 가서
뼈 몇 줌으로 바뀌어 나온 자식을
강물에 뿌리는 일은
크나큰 슬픔이다
정신병원에 가서
환자복 입고 희게 웃는
누이동생을 보는 일은
기나긴 슬픔이다
내 삶의 원천이며
원동력인 슬픔이여
너에게 사로잡혀 울게 하지 마라
남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 숙이고
몸 더욱 낮추어야 하리니
사랑은 나를 끊임없이 구속했으나
미움은 이날 이때껏 나를 키웠다
막막한 슬픔이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
어금니 꽉 깨물고 응시하리
기나긴 미움
크나큰 슬픔의 실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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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1960~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출생.
1984년 시 「畵家 뭉크와 함께」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1년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2004년 시론집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
슬픔을 경유하지 않고 존재의 바닥에 이를 수 없다. “지혜자의 마음은 애통해 하는 집에 있
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쾌락의 집에 있다.”(전도서) 슬픔은 타자의 아픔에 ‘나’를 겹쳐놓
는 일이다. 슬픔을 “응시”할 때, ‘나’는 타자에게로 건너가 타자와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슬
픔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기나긴 미움”은 “막막한 슬픔” 앞에 무력하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