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서 아름다운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들어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 든 때에는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에는 버둥버둥 걸으며
모두에게 바보라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고통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 미야자와 겐지 作 <비에도 지지 않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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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宮?賢治. 1896년- 1933년
일본의 동화작가, 시인, 농촌계몽가, 화가, 교육인.
이와테현 하나마키시 출신. 에스페란티스토이기도 했다.
100여편의 동화를 써냈으며 대표작으로 바람의 마타사부로,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첼로 켜는 고슈가 있다.
■ 여운이 오래 남는 시다. 이 시를 쓴 미야자와 겐지는 독특한 삶을 살았다. 전당포를 경영
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불교에 심취한 이후 가업을 버리고 평생을 농민들과 함께
살며 아름다운 글을 남겼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살아
서는 빛을 못 봤지만 사망 이후 일본의 국민작가가 된 인물이다.
그에게 삶은 뭔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아니었다.그에게 삶은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었다.
버리고 버려서 자연스러운 존재만이 남는 순간을 그는 꿈꾸었다. 바보라는 놀림을 받으며
사는 삶. 남에게 칭찬받는 것마저 부담으로 여기는 삶. 그런 삶이 그가 꿈꾸던 삶이었다. 무
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를 때, 가끔 사는 일에 회의가 밀려올 때 찾아서 읽으면 마음이 편안
해지는 시다.
[허연 문화부장(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