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무심히
◈박 영◈
집 근처 세탁소 아저씨
점점 줄어드는 세탁물 대신
자기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을까
구겨진 얼굴 다리미로 열심히 펴고 있다
힐끔 쳐다보면 빳빳한 얼굴 표정이 없다
세탁물을 맡기면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옷에 대한 기억만 차곡차곡 쌓은 채
올해는 그 옷이 사라졌네
떠나보낸 아쉬움도 말없이 같이 하면서
올해는 그 사람이 사라졌네
따로 세탁해야 하는 기억은
다른 곳에 넣어 깨끗이 잊고 사시라
세탁물 꺼내들어 얼룩을 확인하면서
그저 무심히 세탁기 돌 듯 무심히
하나씩 지워지는 것
그저 무심히 큰 입속으로
세탁물 집어넣으며 무심히
우리 머리에서 지워지는 세탁소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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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2006년 '애지' 등단.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작노트>
이미 다 먹혀버린 세상이다. 세탁기가 돌고 역사도 돌고…부풀어 오른 공룡 뱃속, 터질 일만
남은 것이다.
kookje.co.kr/201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