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버릇
◈차주일◈
추억하는 건 늙지 않기 위해서죠.
훗날 당신 돌아왔을 때
바로 나 알아볼 수 있도록
그 찰나를 위해 내 여생을 바치고 있죠.
바라보는 것만으로
당신 가둘 수 있었던 내 눈,
이제 깜박여야만 당신이 와요.
추억은 고통스러운 문장이지만
주인공이 사라지는 건
비극보다도 더 비극적이죠.
당신 모르겠군요.
하루에도 수백 번
눈 질끈 감는 새 버릇을요.
당신의 뒷모습을 잡아둘 방법은
나를 빨리 늙게 하지만,
오늘도 눈 질끈 감고 당신 뒷모습을 외워요.
눈주름이 당신을 동여매고 있네요.
내 눈물 쓸어주던 당신 손등도
내 표정을 쥐고 늙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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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일=(1961~ )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2010)이 있음.
늙은 사랑이 짠한 것은 그것이 고통의 긴 서사(敍事)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당신을 가둘 수 있었던 장밋빛 시절은 멀리 사라졌다. 이제 “하루에도 수백 번/
눈 질끈” 감아야 당신의 뒷모습이라도 겨우 잡아둘 수 있다. “내 눈물 쓸어주던 당신 손
등”도 함께 늙으니 시간은 어느새 종점을 향해 있다. 늙은 사랑은 얼마나 뼈아픈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