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뿔싸
◈오탁번◈
까치설날 아침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세배를 한다
5만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세배를 하면
5만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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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1943~ )제천시 백운 출생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되고
이듬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된 후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處刑의 땅'이 당선 등단
시집 《아침의 豫言》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장갑》 《손님》과 소설집 《處刑의 땅》
《내가 만난 女神 》 《절망과 기교》 《저녁연기》 《새와 十字架》 《혼례》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 문학상(1997) 등을 수상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두 살 손녀의 재롱 앞에서 백기 투항한 할아버지가 스무 살의 손녀를 상상한다. “배꼽세배”
는 “배꼽티”로, “하버지”라는 옹알이는 “할아버지”라는 성인의 언어로 바뀔 것이다. 5만원
의 세뱃돈은 그 몇 배로 뛸 것이다. 그래도 즐거울 텐데, 문득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라는 질
문이 떠오른다. “하뿔싸”는 ‘아뿔싸’보다 훨씬 강력한 할아버지만의 감탄사다. 5만원권을 5
만 개 줘야 해도 그날이 이 할아버지와 함께하기를.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