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김왕노◈
아침에 어머니가 쌀을 씻으며 말하신다.
사람은 빚 없이 산다지만 다 빚으로 산단다.
저 꽃나무도 뿌리를 적신 이슬에게 빚졌지
구름도 하늘이 길 하나 빌려 주지 않으면
어떻게 구름이 구름으로 흘러갈 수가 있나.
내 아버지도 평생 네게 빚지고 저승 갔지
그 빚 다 갚으려고 아버지 참새 한 마리로
아침부터 마당 대추나무에 날아와
저렇게 미주알고주알 끝없이 노래해 대지
나도 아버지에게 평생에 진 빚 갚으려
흥얼흥얼 아침부터 맞장구친다고 바쁘지
아버지 먹고 가라고 쌀 한 줌 진작 뿌려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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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1957∼)경북 포항 (옛 영일군 동해면 일월동) 출생
매일신문 ‘꿈의 체인점’으로 신춘문예 당선
시집『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사진속의 바다-해양문학상 수상집』 등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등 수상. 한국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현재 문학잡지 <시와 경계> 주간
‘빚’에 한 획 더하니 ‘빛’이로구나. 너의 믿음인 빚 얻으면 내 기쁨 한 획 더하여 세상 빛내라
는 뜻이로구나. 나무는 이슬 빚 얻어 꽃으로 갚고, 구름은 하늘 빚 얻어 단비로 갚고, 아버지
는 이생 빚 갚으려 아침 노래 부르고, 어머니는 흥얼흥얼 맞장구치다 또 쌀 한 줌 갚는구나.
빚은 나 아닌 것들이 내게 쳐주는 헹가래요, 빛은 내가 거드는 손짓이로구나. 다만 숫자로
된 빚은 애초 그런 마음이 아니었기에 빛보다 어둠에 가깝도록 무겁구나.
<시인 반칠환>[시로 여는 수요일]
hankooki.com/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