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등
◈엄재국◈
호박꽃 활짝 열린 콘센트에
벌이 플러그를 꽂는 순간
온 세상 환합니다
넝쿨넝쿨 잎사귀
푸르게 푸르게 밝습니다
겨울, 봄, 여름…… 점멸하는 거리
울타리 세워 담장 세워
저 멀리 가을까지 닿은 전선에
늙은 호박 골골이 환합니다
---------------------------------------------------------------
▶엄재국=(1960~ ) 경북 문경에서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정비공장 장미꽃』(애지, 2006)이 있다.
호박꽃이 활짝 피어 있다. 벌이 붕붕 날아와 꽃에 내려앉는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순간
이다. 환한 빛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시골집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때처럼. 이제 가을
의 끝까지 호박은 매일 전력 공급을 받는다.
엄재국 시인은 시 '꽃밥'에서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만개
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라고 썼다. 모든 꽃의 꽃핌을 보노
라면 어머니께서 솥에 쌀을 안쳐 밥을 짓는 것만 같다.
어머니께서 고봉밥을 지어 사랑을 보태듯이 꽃은 피어 이 세상에 밝음을 보탠다. 꽃핌은 우
리에게 활짝 트인 시계(視界)를 보여준다. 어둠의 한가운데에 전구가 켜졌을 때처럼 혹은
갠 하늘처럼.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