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풀
◈천양희◈
썩은 흙에서 풀이 돋고
썩은 풀이 반딧불을 키운다
썩은 것이 저렇게 살다니
썩은 풀의 소신공양!
썩고 썩은 풀이여, 마음은
너무 빨리 거름이 되는구나
나는 아직
속 썩은 인간으로 냄새를 풍긴다
풀밭은 또 저만치서
썩은 풀을 피운다
나에게 썩은 것이 있다면
썩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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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1942년 부산에서 출생.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등이 있음.
<단추를 채우면서>로 소월시 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이렇게 보면 세계는 “썩은 것”들의 축제다. 그러나 썩음은 본래의 무기물로 돌아갈 때만
생명을 만든다. 온전히 돌아가지 않은 썩음은 생명이 아니라 “냄새”나는 죽음을 향해 있다.
썩은 것의 “소신공양”은 무기물화(無機物化)의 완성된 상태다. 그 위에서 풀이 자라나고,
반딧불이 난다. 이런 썩음이 (냄새나는) 썩음을 이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