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반지 외
◈조명선◈
벌거벗은 그 친구
냇가로 들판으로
짓궂게 달려와서
모른 척 툭 던지던
시방, 나
그 풀꽃 반지
뜬금없이 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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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선=(1966~ )경북 영천 출생
1993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2009년부터 대구시조시인협회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조분과위원장으로 활동
현재 대구광역시 교육과학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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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벌거벗고 '냇가로' 또 '들판으로' 내닫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방학 냇물은 그렇게
까매진 얼굴들로 더 반짝거렸다. 수영복 따위 모르던 때는 '빤스'만도 부끄럽지 않았으니
개중에는 '풀꽃 반지'를 '툭' 던지고 내뺀 머슴애도 있었던 게다.
풀꽃도 눈빛도 개똥벌레도 별처럼 맑던 그때 종종 만들어본 '풀꽃 반지'. 여러 겹을 길게 엮
으면 토끼풀꽃은 좋은 화관도 되었다. 화관을 서로 씌우며 신부라도 된 양 깔깔대던 풀밭
시절의 이야기다. 풀꽃 화관이라도 기분은 올림픽 월계수 관이나 진배없었다고나 할까. 그
러는 동안 벼도 수수도 목이 굽어갔다.
'뜬금없이 끼고 싶다'는 구절에 손가락을 가만히 만져본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 옛 개울가
를 더듬거려본다. '뜬금없이' 그리운 개구리 같은 친구들은 어디서 이 폭염을 나고 있을까.
리우의 벌거벗은 춤이며 환호로 긴 폭염을 물리는 나날, 이겨도 져도 우는 젊음들에게 화관
을 얹어준다. 수포는 아니려니, 오늘을 건너는 무수한 땀들에게도.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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