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자리
◈구 상◈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作 <꽃자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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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상=(1919~2004)본명 : 구상준(具常浚)
세례명 : 요한 학력 : 일본 니혼대학교
시집 『구상시집』 『초토의 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까마귀』『드레퓌스의 벤취에서』『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구상연작시집』『구상시전집』 수필집 『침언부어』 등.
■ 비운의 화가 이중섭의 마지막을 지켰던 친구가 시인 구상이었다. 그는 가난과 병마에 시
달리는 이중섭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이중섭이 사망하자 주검을 수습했다. 구상은 평생
종교적 경건함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를 썼다.
그는 시어를 통해 세상을 위로하고, 세상에 희망을 주고자 했다. 이 시는 평이하면서도 깊은
시다. 자기가 있는 자리를 `꽃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시인의 지적은 맞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저주해서 뭘 할 것인가. 그럴거면 차라리 그 자
리를 사랑해버리면 어떨까. 내가 있는 자리를 사랑하는 일.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
[허연 문화부장(시인)][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