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 Glenn Medeiros
가을, 상수리나무
◈윤경희◈
누가
읽지도 않고
말없이 지나갔네
행여,
부딪힐까 봐
온몸 웅크린 채
먼지 낀
둔탁한 건반
툭,
치고 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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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1964~ )경주출생
2003년<생각과 느낌> 수필등단,
2006년 "유심신인문학상"으로 시조 등단
시집에 <비의 시간><붉은편지> 동인지<겹>이 있다.
한국문협, 대구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회,
대구문인협회원, 영언 동인 현, 대구문인협회 편집간사
2006년에는 시조부문 유심신인문학상을 수상
2014년 대구예술상을 수상했다.
투둑 툭 지는 게 많아지는 즈음이다. 가을 산은 떠날 준비들로 특히 더 분주하다. 그중 도토
리 떨어지는 소리의 울림이 길게 남는다. 빛깔이며 모양새도 매끈하니 앙증맞은 도토리. 그
래선지 발치에 막 떨어지는 것이나 떨어져 뒹구는 것이나 자꾸 손이 간다. 다람쥐들 일용할
양식으로 남겨둬야지 하면서도 도토리만 보면 줍고 매만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상수리나무 옆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를 주워 본다. 적요를 깨뜨리는 소리에 적요의 실
체를 실감하는 시간, 그 속에는 '누가/ 읽지도 않고' 지나간 고요도 배어 있을 것이다. '부딪
힐까 봐/ 온몸 웅크린 채' 지나가 버리길 기다리던 침묵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로
'먼지 낀/ 둔탁한 건반'을 잊지 않았다는 듯 '툭,/ 치고 가는 가을'. 묵혀둔 건반이라도 한번 울
려야겠다.
익을 대로 익어 쏘옥 빠지는 아람. 서정시는 그렇듯 '회동그란히'(박용철) 익어 떨어져야 진
수라던가. 잘 익은 '회동그란히'에 붙들려 상수리 아래를 거닌다.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