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사람
◈최태랑◈
흰 모시적삼 아버지
중절모에 팔자걸음이 앞서가고
누런 베적삼 어머니는
열무 단을 이고 따라간다
힐끗 돌아보며 왜 이리 더디냐고
타박하던 아버지
한껏 치장한 젊은 며느리
깃털 같은 손가방 들고
아들은 아이 안고 기저귀가방도 들었다
뒤를 보며 늦었다고
짜증내는 며느리
힘든 것은 언제나 뒤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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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랑=(1942~)목포 출생,
2012년 [시와정신] 등단 2015년 전국계간지 작품상
저서 시집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수필집 [아버지
열매] 시가 있는 에세이 [내게 묻는 안부]
얼핏 보기엔 코믹한 풍경 같지만, 이 시는 군집생활을 하는 생물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사회집단의 압도적 다수는 앞사람이 아니라 “뒷사람”들이다. 누군들 앞서가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앞선 자들은 항상 소수이고, 뒷사람들이 세상의 허드렛일을 다 책임진다.
화려한 장식도 없이 고된 노동의 짐을 진 뒷사람들과 함께, 나란히 걸을 수는 없나.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