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가을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배고픔을 먼저 새끼들에게 가르친다.
제 품 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연습에 지친
새떼 군단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며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행렬 속엔
어미새들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한 울음소리가
높은 빌딩 유리창에 몸 부딪쳐서 아찔하게
떨어지는 그 소리만 가득하다
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모질이들 방향 없이
빈 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
아파트 단지에는 드문드문
따듯한 입김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
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자국 같은 비행체들
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
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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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1942∼)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 1970년 ‘월간문학’ 시로 등단
시집 ‘K읍 기행’,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등
대한민국문학상과 한국시인협회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
■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왔다.’ 미세먼지 가득한 안개 정국 속에서 ‘취업빙하기’를 겪고 있
는 청년들은 시급 알바 현장에서 ‘손님 없으니 퇴근하라“는 ’꺾기”와 같은 치졸한 갑질 때문
에 쥐꼬리만한 임금조차 깎이고 있다.
권력의 비호를 거들먹이며 갑질을 하고, 전화 한 통화만으로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수십억이
오고 갔다는 뉴스가 미세먼지처럼 하루를 덮치는 가을이다.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배고픔을 먼저 새끼들에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서민과 노동자 부모들은 이토록
혹독하고 “가난한 가을”을 건너기가 참담하기만 하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이란 거대 자본의 이익 창출이 주된 목적이기에 서
민이나 노동자 부모들은 모든 개인의 고른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을 형성할 능력이 없어 무
력감을 느낀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키며,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행렬”에서 멀리 떨어져서 가슴을 쥐어뜯는 가을이건만, 소수 자본가들에게 사유화
된 거대 자본이 권력과 결탁하여 저지른 비루한 현실 앞에서 한숨만 쌓인다.
그 뿐이랴 권력과 거대 자본가들은 언론과 각종 매스컴과 교육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기에,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조차 만만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F. W.
Nietzsche)의 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어떤 상태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그 상태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
솟아” 올라 역사와 현실을 조망하는 날카로운 새의 눈을 지녀야 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mhj21.com/2016-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