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선
◈최재남◈
바람 든 무릎 위에
지나간 시간을 뉘고
떨리는 손을 달래
가위를 드는 저녁
청바지 해진 허벅지
너도 뼈가 허옇다
돋보기 고쳐 쓰고
서걱서걱 잘라낸 뒤
팽팽히 당겨보지만
어긋나는 무릎과 무릎
창밖에 버려두었던
별빛 한 첩 덧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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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남=(1968~ )안동 출신
2008년 ‘시조21’에 ‘우포에서’가 당선돼 등단
‘한결’ 동인으로 있다
시월은 문화 이름표 단 축제며 행사가 넘친다. 하늘과 바람과 곡식과 과일 모두가 한껏 좋은
상달인 때문이겠다. 그 덕에 '행사 과로사'라는 신조어 엄살이 터질 만큼 분주하다. 조금만
찾아다녀도 지칠 즈음 '해진 허벅지'에 확 꽂힌다. 옷 임자도 무슨 일로든지 꽤 고되게 다녔
나 보다.
수선 가위 앞에 놓고 '너도 뼈가 허옇다'고 해진 바지를 쓸어주는 저녁. 수선을 수시로 하던
시절의 등잔불 바느질 영상이 겹쳐온다. 수선집에 맡기기 전의 어머니들은 해지고 찢긴 아
이들 옷을 늘 깁고 꿰매고 그랬다. 다친 무릎에 '아까징끼'를 발라주듯 찢어진 옷들도 말끔
히 치료해주곤 했던 것이다.
덩달아 시린 무릎을 쓸어주는 시월 끝자락. 흑백사진 같은 수선의 시간들이 새삼 깊숙이 들
어온다. 지친 마음의 수선 삼아 무슨 편지라도 써야겠다. '창밖에 버려두었던/ 별빛 한 첩'도
추신처럼 덧대….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