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짝
◈김정환◈
찬 새벽 역전 광장에 홀로 남으니
떠나온 것인지 도착한 것인지 분간이 없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구겨진 구두 한 짝이.
저토록 웅크린 사랑은 떠나고
그가 절름발이로
세월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 하지,
벗겨진 구두는 홀로 걷지 못한다.
그렇게 구두 한 짝이 있다.
그렇게 찬 새벽 역전 광장에,
발자국 하나로 얼어붙은
눈물은 보이지 않고 검다.
그래. 어려운 문제가 아냐.
기구한 삶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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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金正煥, 1954년 ~ )서울에서 출생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강변 동내에서〉 등단
주요 작품으로 〈해방 서시〉,〈유채꽃밭〉 등이 있으며
시집《황색예수》,《지울 수 없는 노래》,《좋은 꽃》 등
2007년시집《드러남과 드러냄》으로 제9회 백석문학상
2009년에는 제8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사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형태를 바꿀 뿐이다.”(H 발자크) 사람은 떠나고
구두 한쪽이 남아 “기구한 삶”의 서사(敍事)를 보여 준다. 구두엔 한 사람의 고된 밥벌이와 “
웅크린 사랑”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떠난 사람은 어디선가 새로운 유랑의 서사를 쓰고, 남
은 사람이 남은 사물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