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라는 말은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 들이지 않고 문질러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지도 않고 그저 끔벅끔벅 앉아 있다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있는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
이곳이 저곳에 내려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를 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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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1969~ ) 부산에서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계간 《시와 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즐거운 제사〉 당선.
시집으로 『너의 반은 꽃이다』가 있음.
“어깨너머”는 경계(境界)의 자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자리, 한 사물이 다른 사물
을 만나는 접속의 자리. 그러나 “어깨너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탈주(脫走)와 전이(轉移)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은은하고, 느리다. 떠난 세계와 떠날 세계가 길항(拮抗)하지 않는 곳, 한
어깨가 다른 어깨를 내어주는 곳.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11.16